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작은 마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런던 하숙집 딸과의 열렬한 사랑이 깨지고 난 뒤 고흐는 광산촌으로 들어가 전도사로 일한다. 이때 고흐는 사회성 짙은 밀레의 작품에 감동해 화가의 길을 걷게된다. 고흐의 초기 작품인 '감자를 먹는 사람들 을 보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민이 느껴진다. 1886년 27세의 고흐는 파리에서 본격적인 화가의 삶을 시작하지만 곧 파리에 염증을 느끼고 빛이 풍부하고 따뜻한 프랑스 남부지방 아를로 내려간다. 새로운미술 사조를 만들 생각으로 고흐는 당시 존경했던 고갱을 초청하지만 고갱과의 생활은 곧 파국을 맞는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고갱은 감성적인 고흐와 성격뿐 아니라 그림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고갱이 파리로 떠나려 하자 고흐는 고갱의 뒤를쫓아 고갱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창녀에게 줘버린다. 이후 고흐는 정신병이 깊어지자 이를 근처에 있는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하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 입니다.
되었다. 고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바라기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해바라기가 풍부한 변화상을 나타내며 태양의 또는 생명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듯하나." 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통해서 강렬한 생명력을 본 것이다. 2층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뛰는 고흐의 작품은 일본풍이 가미된 작품이다. 19세기말 유럽에서는 일본문화를 알고자 하는 붐이 일어났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본문화에 대한 식견이 없으면 지식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중 일본 도자기가 가장 인기가 있었는데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포장한 종이에 그려진 판화그림이 우연히 서양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이 예쁜 그림은 우키요에라는 일본의 채색화로 명암 하나 없이 만화처럼 보일 정도로 단순했다. 형태가 선으로만 되어 있고 색은 짙고 대담했다. 구도 역시 파격적이었으며 내용은 평범한 생활상이 주를 이루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 일본판화야말로 지루한 자신들의 그림을 바꾸어 줄 색다른 무엇으로 느꼈다. 고갱, 드가 등 당시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은 우키요에에 매료되어 형식이나 내용에서 이 판화그림의 충격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고흐도 그 화가들의 대열에 있었다. 결국 명암과 원근법에 기초하여 사물을 입체적이고 이상적으로 그리려던 400년간의 르네상스 전통을 인상파 화가들은 우키요에를 접하면서 버린 것이다. 평면적이면서 짙은 색감 그리고 과감한 구도는 모든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런 이유로 서양화가 중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고흐다. 고흐 미술관의 마지막 전시 작품은 그가 마지막으로 그렸던 '밀밭 위의 갈가마귀떼' 다. 고흐미술관을 관람하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서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고흐가 그린 총 작품 수와 그가 화가로 그림을 그렸던 10년 기간을 계산해보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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